진하오 X450
이 물건을 받아봤을 때 정말 말을 잃었다.
이게 4딸라라고?
지금까지 여러 초저가의 중국 물건들을 구매해 왔었지만,
이것만큼 충격적인 것은 없었다.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중국은 분명 현자의 돌을 발견해낸 것이 아닌가
하는 결론으로밖에 귀결될 수 없다.
도대체 무슨 재료로, 어떤 기계를 사용하여, 무슨 사람들을 데려다가, 어떤 방법으로 물건을 만들길레
이러한 물건을 4딸라에 판매할 수 있는 것인가.
그보다 어떤 유통구조이길레, 그래도 해외배송인데 어떻게 배송비가 무료일 수가 있는 것인지..
하여튼 물건을 받아보고 나면, 진하오는 만년필을 갖고싶어 안달난 사람들을 위해
자선사업을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차판매가가 4딸라면.. 공장에서 보는 마진은 한 자루에 얼마가 떨어질지..
심지어 컨버터도 내장돼서 온다.
모 회사의 모 컨버터와 매우(거의) 동일하게 생겼지만, 품질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 윗부분에서 잉크가 누수되는 현상이 있지만, 작정하고 흔들지 않는 이상은
잘 발생하는 결함은 아니다.
가격으로 따지면 100원이나 할까 하는 저 컨버터가
지옥에서 건져올린 듯한 지랄맞은 파이롯트의 컨버터보다 훨씬 쓰기 좋다.
만년필의 전체적인 퀄리티는 나쁘지 않다.
진하오의 만년필은 오히려 유명 중국 브랜드인 영웅, 영생, 금성과 같은 회사들보다 오히려 더 좋다는
평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바디의 무늬는 실제로 보면 매우 싼티난다. 따라서 가능하면 무늬가 없는 모델을 권장한다.)
그러나 이 만년필을 사용하는 유일한 목적은 제브라 G닙으로 교체하여 사용함에 있다.
위와 같이 오리지널 닙과 G닙은 삽입부가 거의 동일한 형태이기 때문에,
복잡하거나 큰 힘이 들지 않고 간단하게 닙을 교체할 수 있다.
오리지널 닙에는 진하오의 로고와 더불어 의미불명의 18K GP가 음각되어 있다.
한 번도 써보진 못했으나, 아마 M닙 정도의 굵기일 것이다.
교체 방법은 간단하다 :
일단 오리지널 닙과 피드를 통째로 빼내고,
피드 위에 G닙을 얹은 후 들뜨지 않도록 뺀치로 슬쩍 눌러준다.
그리고 나서 닙과 피드를 삽입하면 끝이다.
마지막에 닙의 틈과 피드 첫 번째 홈을 일치시켜주면 된다.
물건 뽑기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큰 힘을 주지 않아도 잘 들어간다고 하고, 누군가는 억지로 끼워 넣었다고 하고,
피드를 좀 갈아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나의 경우는 좀 억지로 끼워넣었다.
피드를 정렬시키는게 은근 까다로워 2~30번은 뺐다 넣었다 했던 것 같다.
닙이 피드보다 더 뻑뻑하게 들어가기 때문에, 닙을 먼저 더 깊게 넣은 후
피드를 거기에 맞춰 살살 끼워 넣다 보면 라인이 일치된다.
유튜브의 가이드를 보면, 양각된 G 거의 앞부분까지 삽입이 되는 것 같은데,
내 펜은 최대한 밀어넣어도 저 정도밖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사용하는데에 문제는 전혀 없다.
이렇게 완성된 프랑켄 펜은 한마디로 완벽하다.
많은 만년필 사용자의 소망인, 딥 펜의 연성 닙을 잉크를 채워 쓸 수 있으니.
펜이 좀 무거운감이 없지 않지만, 필감은 완벽하고 아무리 빨리, 많이, 굵게써도 흐름이 결코 끊기지 않는다.
현행 만년필 중 가장 딥 펜의 필감에 가깝다는 파이롯트 742 FA닙과 비교해서라도,
커스텀은 지나치게 헛발, 레일로딩, 끊김이 자주 발생하기에, 쓰다보면 내가 이러려고 만년필을 쓰나 하는
자괴감까지 들게 된다.
반면 이 펜은 완벽하다.
그렇게 3주가량을 하루 두 시간씩 매일 쓰다보니 닙이 벌어졌다(...)
벌어진 닙을 장례시켜주고 오랜만에 스테노를 다시 잡아보니, 그 동안 내가 얼마나 꾹꾹 눌러쓰고있었는지
확연히 알게됐다.
살짝 종이에 대기만 해도 슬슬 벌어지는 스테노나 로즈닙에 비해, 제브라 G닙은 꽤나 단단하다.
힘을 완전 빼고 쓸 경우 거의 EF닙 정도로 얇게 나오고, 어느정도 힘을 줘야 굵게 획 변화를 줄 수 있는 편이다.
어쩌다 보니 나쁜 습관이 배게 되었지만, 닙이야 새로 교체해주면 그만이니 큰 부담은 없다.
이 펜은 사용감 면에서는 최고지만, 그래도 닙은 여전히 딥 펜용 닙이기에 부식에 약하므로 일반 만년필보다는
비교적 세심하게 관리해줘야한다.
그래서 나는 하루동안 쓸 만큼 최소한의 잉크만 채워서 다 쓰고 난 후에 바로 세척했다.
매일매일 세척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렇게 했다.
좀 귀찮을 수는 있으나, 이 정도의 만족스러운 성능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할 만 하다.
샤워 전 5분정도만 투자하면 충분하다.
매일 세척했기에, 내부가 좀 깨끗할 줄 알았으나 분리해보고 나니 그냥 지저분하다.
하지만 매일매일 닙을 뽑아서 세척할 정도의 정성은 가지고 있지 않다.
위에서부터
커스텀 742 FA,
진하오x450 + 제브라G,
스테노
이걸 아마 잉크 다 쓸때까지 이어서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써 본 잉크로는,
파커 큉크, 워터맨 세레니티, 이로시주쿠 죽림, 월야, 토필, 모미지, 제이허빈 달의 먼지인데,
큉크는 뭐 워낙 무난하게 어느 펜에나 잘 나오고, 워터맨도 마찬가지이다.
이로시주쿠 시리즈중에는 모미지가 궁함이 제일 잘 맞는 듯 하다.
제이허빈 달의 먼지는, 그 무렵 닙이 벌어져서 그런지는 확실치 않으나,
아무튼 헛발과 끊김이 무척 자주 일어났다.
결론 : 비싼 돈 들이지 말고 싸고 좋은 펜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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