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AROID SX-70
즉석 카메라는 꽤나 오래 전부터 항상 위시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구체적인 모델은 정해놓지 않았지만, 그게 폴라로이드건 인스탁스건 크게 상관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지름)신의 계시가 내려왔고, 급격한 뽐뿌에도 불구하고
근 두 달을 여러 모델을 비교하며 고민했다.
내가 고려한 사항은,
1. 당연히 품질 제일주의. 이미지 퀄리티가 가장 중요하다.
2. 최대한 수동으로 조작할 수 있는 범위가 커야 할 것.
3. 충전식 배터리 구동이 아닐 것.(건전지 사용)
4. 심하게 부담스러운 부피가 아닐 것.
5. 예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대략 20~30선)
이상이었다.
일단 품질면에서는,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폴라로이드 필름을 사용하는가, 인스탁스 필름을 사용하는가 이다.
무수한 구글링과 온갖 리뷰를 통해 알아본 결과,
사실 즉석 카메라의 품질은 다 거기서 거기이므로.. 어떤 필름을 사용하는가가 오히려 더 중요하게 보인다.
물론 마미야에 부착하여 사용하는 폴라로이드 백이나,
올드 폴라로이드 모델 중 이런 녀석도 있다.
이런 녀석들은 1. 이미지 품질이 월등히 좋고, 2. 100% 매뉴얼 조작이 가능하면서 3. 폴라로이드 필름 자체 배터리로 구동(혹은 수동으로)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조건들을 충족하지만
4. 심하게 부담스러운 부피이다.
그리고 애초에 저런 카메라로는 그냥 120mm 필름을 쓰고 말지 왜 굳이 폴라로이드를(...)
(심지어 장당 3000원 꼴인 폴라로이드 필름은 평범한 120mm 필름 가격을 아득히 넘어선다.)
가격은 그렇다 쳐도 구하기 힘든건 덤.
따라서 단순히 카메라의 선택에서 두 가지로 좁혀지는데,
1. 폴라로이드 사의 구, 신형 카메라.
이를테면 오리지널 폴라로이드 원스텝 올드 카메라나 요새 현행으로 나오는 원스텝 등이 있다.
2. 후지 인스탁스 혹은 로모, 라이카 등의 인스탁스 규격 필름을 쓰는 카메라들.
후지 인스탁스 미니시리즈, 스퀘어 시리즈, 로모 아우토맛 시리즈, 라이카 조포트 등.
초반에는 후지 인스탁스냐, 로모 아우토맛이냐에서 심히 고민했다.
(물론 고민이 심화되고 나서는 당연히 라이카 조포트도 대열에 합류..)
비교적 조작의 범위가 넓은 로모,
평범하고 안정성이 높은 후지,
비싼 라이카.
그러나 로모는 로모 답게... 퀄리티의 편차가 매우 심하다는 말에 일단 제외되었고,
결국에는 인스탁스냐, 돈지랄이냐의 고민으로 좁혀졌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대표적인 기종인 미니90과, 애초에 이것과 (아예)다를것 없는 조포트 둘 다 충전식 배터리를 쓴다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충전식에 대한 의심병이 있는 나에게는 이게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었다.
그렇다고 미니11 같은 카메라를 사기에는 플래시 off기능조차 없는, 내가 조작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전원on밖에 없는 카메라를
구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얘도 지름)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폴라로이드 SX-70
이 카메라를 보는 순간 모든 고민이 사라졌다.
‘얘를 사야해’
이 녀석은 70년대 생산된 오리지널 SX-70은 아니고,
내부의 기판이 교체된, refurbished 된 제품이다.
물론 기판을 제외한 모든 부분은 오리지널 그대로.
(클리닝과 리스킨 작업이 들어간 모델도 있다.)
리퍼비시된 제품의 특징이라면, 오리지널 SX-70같은 경우는 전용 SX-70필름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카메라의 노출계가 ISO160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더 많이 사용되는 폴라로이드600필름같은 경우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ISO가 600이다.
이게 일반 필름카메라같은 경우에는 ISO600과 160에서의 입자 차이가 상당히 크기에
당연히 ISO160이 선호될 수 있겠으나, 어짜피 해상력이 구린 폴라로이드 카메라에서는
큰 의미가 없는 차이라고 한다.
게다가 보통 조리개값이 8이나 12 혹은 16에 고정되어있는 카메라 특성상
ISO값이 조금이라도 높은 게 당연히 유리하다.
특히 SX-70같은 경우는 플래시가 내장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다른특징으로는 노출계의 정확도가 올라가고, 셔터스피드의 범위가 대폭 증가했다고.
(그러나 이것은 알 수 없다. 회사의 의견에 따르면 그렇다. 근거는 모르겠다. 알려달라 해도 안 알려준다. 자기도 정확히 모르는 것 같다.)
참고로 오리지널의 셔터스피드 범위는 10초(이상)부터 1/175초 이다.
근데 삼각대 소켓도 없고, 셔터 릴리즈도 따로 없어서 장노출은 고사하고 1/30초 정도만 해도 불안하다.
유튜브에 보면 강제 벌브모드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긴 하다.
이 카메라의 특징으로는,
1. 특이하게도 SLR이다.
이 카메라를 제외한 모든 즉석 카메라는 내가 알기로는 죄다 레인지 파인더 방식이다.
즉, 써본 사람들이면 모두 알겠지만 뷰파인더를 통해서 본 이미지와, 실제 촬영된 이미지가 다르다.
뷰파인더가 렌즈를 통해서가 아니라, 별도로 분리된 창을 통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니시리즈 같은 경우는 프레이밍 하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하지만 이 카메라 같은 경우는 일반 SLR방식과 마찬가지로, 상이 내부의 거울을 통해 뷰파인더로 보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SLR처럼 찍을 때 철커덕 하고 미러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2. 초점 조절이 수동이다.
전면에 위치한 기어를 통해서 초점을 수동으로 조작한다.
(근데 어짜피 조리개값이 8이라 대충 맞춰도 맞는다(...))
다른카메라들과 마찬가지로, 초점을 맞춰가며 뷰파인더로 들여다보는 세계는 새삼 감동적이다.(찍고 나면 본 것과는 다르게 나오는게 문제)
3. 노출 보정이 가능하다.
가능하긴 한데.. 그냥 막연하게 밝게, 더 밝게, 더더 밝게, 어둡게 더 어둡게, 더더 어둡게 인지라
크게 의미는 없어보인다(...) 게다가 예를들면 어둡게 찍으면, 적절하게 노출이 맞게 찍힌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전체적으로 노출값을 확 내린 느낌으로, 다시 말해서 노출 부족으로 찍힌 사진처럼 흐리멍텅해진다.
해외 커뮤니티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의견은, 오리지널을 사용한다는 전제 하에
상시 노출 보정값을 어두운 쪽으로 한 칸 혹은 두 칸 정도 놓고 쓰라고 한다.
이게 암묵적인 기본 세팅으로 통하나 보다.
아무래도 F8에 ISO160이다 보니 카메라에서 노출 언더로 판단해 오버노출로 촬영될 가능성이 큰 듯 하다.
4. 돈 먹는 괴물이다.
말 그대로 돈 먹는 괴물이다. 총 8장을 찍을 수 있는 필름 한 팩에 2만 5천원 가량 하니,
대략 장 당 3000원이다.
근데 3000원짜리 만족스러운 사진을 뽑아 주냐?
이건 복불복 수준이라 기대하기 힘들다.
운이 좋으면 아주 아름다운 사진을 얻을 수도,
그렇지 않으면 그냥 3000원 길바닥에 내버리는 수준이 나오기도.
게다가 현재 나오고 있는 폴라로이드 필름은 오리지널 폴리로이드 필름이 아니다.
폴라로이드사는 2001년 파산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카메라와 필름이 단종되었다.
이후 현재 나오고 있는 필름은 임파서블 프로젝트 그룹이라는 곳에서 생산하는 필름이다.
원래 즉석카메라의 기본인 한 팩에 10장 이라는 것이 8장으로 바뀌었고,
필름의 품질도 예전의 그 명성에 못 미친다고 한다.
그러면서 가격만큼은 미친듯이 사악하다...
10장이 아니라 8장이기 때문에, 필름 카운터를 확인할 시 카메라에 표기되는 숫자에 -2를 해야한다.
따라서 2가 표시되면 필름이 모두 소모된 것.
그러나 이 필름이 비싼 이유는, 다름아닌 필름 내에 배터리가 포함되어 있어서 그런 면도 있다.
이 카메라는 자체 구동 배터리가 없고, 필름 내에 포함된 배터리로 구동된다.(그냥 배터리 삽입식으로 만들고 필름값을 깎아주지)
5. 접힌다.
카메라를 수 없이 펼치고 접었지만, 그럴 때 마다 무척이나 감동적이다.
단순한 폴딩 카메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기계적 메카니즘의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펼쳤을 때도 아름답지만,
접었을 때의 이 솔리드하고 단정한 느낌이란..
실버 바디와 브라운 가죽도 매우 조화롭다.
.. 이 맛에 빈티지 카메라를 쓴다.
노트와 비교했을 땐 대략 이 정도 두께.
겨울철엔 코트 안쪽 주머니 정도에는 들어갈 정도의 크기이다.
앞 부분의 저 소켓은 플래시 소켓.
이렇게 생긴 오리지널 플래시바를 사용할 수도 있고.
참고로 얘는 10회 사용이다. 딱 필름 한 팩 분량.
임파서블 프로젝트에서 나오는 현행 플래시를 써도 된다.
얘는 건전지 타입.
이미지 품질은 이렇다.
모두가 폴라로이드 하면 딱 기대하는 그 느낌.
빈티지하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소프트하며, 마젠타와 그린, 사이안이 많이 섞여든 컬러이다.
실제로 사진을 들고 자세히 보면,
조악한 품질의 카메라로 실제 촬영하여 현상한 사진같다.
즉 인스탁스에서 찍은 이상하게 인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는 아마 계조가 은근히 풍부해서 그러리란 생각이 든다.
인스탁스 미니11로 찍은 사진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차이가 느껴진다.
판형이 깡패라는 말이 즉석카메라에도 적용된다...
물론 플래시가 터지고 안터지고의 차이가 매우 크지만,
미니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는다고 해도 저렇게까지 뒷 배경의 디테일이 살아있을 수 있을까.
암부와 하이라이트가 저렇게 표현될 수 있을까.
뭐 세세하게 따지지 않고 그냥 즉석카메라의 의의 선에서 생각해보면, 두 기종 모두 훌륭하다.
그러니까,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과연 올드 폴라로이드 기종으로 장당 무려 3000원을 써서 찍을 가치가 있느냐? 가 문제인데,
결론은 글쎄?
이렇게 특수한 경우라면 쓰기 좋으나...
일상적으로 쓰기에는...
그냥 갬성이 절실히 필요할 때나 쓰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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