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lot Custom 742
Pilot Capless Decimo
Pilot Elite

파이로트 삼종세트.
커스텀 742 FA닙
캡리스 데시모 EF닙
엘리트 F닙이다.


우선 캡리스는 말이 필요 없는 실용성 최고의 만년필이다.
생긴 것 부터가 실용성을 표방하고 나온 듯 하다.
누가봐도 그냥 볼펜.
업무용, 짧은 메모용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편함을 보이지만,
역으로 길게 메모할 시에는 구조상 불편하다.
일단 무게가 가벼운 편은 아닐 뿐 더러,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클립부의 위치도
장기간 필기하기에 좋은 그립을 제공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만약 내가 미래에 만년필을 거의 다 정리한다고 하더라도, 이 녀석은 정리해고 리스트에서 제외될 듯 하다.
워낙 압도적으로 쓰기 편하기에..
다만 EF닙을 선택한 것은 실수.
만년필을 처음 쓸 때만 하더라도 무조건 세필세필만 찾았지만,
눈이 점점 침침해져서 그런지 세필로 쓴 건 잘 읽기 힘들다(...)
(물론 쓰기도 점점 어려워진다.)
세필에서 태필로 점점 옮겨가는 것은, 만년필이 손에 익어감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로 보인다.

엘리트 F닙.
그냥 단순히 포켓펜이 갖고 싶었던 것 같다.
(릴리풋을 사고 나니 이 녀석은 더 이상 포켓펜으로 보이진 않는다.)
처음에는 극세필을 사용하다 F닙이 적응되지 않아 잠시 미워하다가,
쓰다보니 특유의 쫀쫀한 필감이 마음에 쏙 들어 한참 귀여워하다,
지금은 밸런스가 좀 많이 애매하다는 생각에 다시 마음이 멀어졌다.
이 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밸런스인데, 엘리트는 기본적으로 캡을 씌워서 사용하는 것이 권장된다.
그러나 캡을 씌울 시 밸런스가 뒤로 쳐지고, 그렇다고 캡 없이 쓰자니 길이가 심히 짧다.

내 손이 성인 남자 기준에서도 상당히 작은 편임에도, 캡을 씌우지 않으면 정말이지 애매하게 걸친다.
전에는 이렇게 쓰는게 편했었다.
왜냐하면 아무생각없이 꾹꾹 눌러써댔으니까...
지금도 물론 필압을 주고 쓰면 저 포지션도 나에겐 불편하진 않다.
오히려 캡을 씌우고 안정적인 것 보다 저 불안정한 상태가 편하다.
그러나 필압을 빼면 펜이 안정적으로 지지되지 않고,
그렇다고 캡을 씌우자니 무게중심이 뒤로 넘어가버려 중간 이상을 잡아야 안정적이지만,
그렇게 잡으면 당연히 정확성을 가지고 쓸 수가 없다.
한마디로 이렇게 쓰나 저렇게 쓰나 필압이 필요하다는 것...
정상인의 손 사이즈면 캡을 씌웠을 때 딱 적당할런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 펜의 촉은 보기보다 연성이라 잘 휘고, 그래서 그런지 쫀쫀한 느낌의 필감이 좋다.
수성펜을 바늘만하게 가공해서 단단하게 만들면 나올 것 같은 필감이라고 해야하나..
부드럽게 쓱쓱 써지면서도 미묘하게 잡아주는 그런 쫀쫀함이다.

커스텀 742 FA닙.
이 펜은 정말 까다로운 놈이다.
파일럿의 10호 FA닙은 쓰기 까다롭다고 정평이 나 있는데,
현행 만년필 중 가장 딥펜에 가까운 정도로 연성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첫째로 익숙해지기 전까지 그 무수한 헛발질과 레일로딩을 참고 견딜만한 인내력을 가져야함을 뜻하고,
두 번째로는 익숙해지고 난 이후에는 펜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자유자재로 쓸 수련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펜과 궁합이 잘 맞는 잉크도 찾아내야한다.
이 모든 과정이 너무 귀찮기에, 구매 직후 근 반년을 서랍에서 재워두다 이제야 다시 꺼내들었다.

흔히 알려진 사실과는 다르게, FA닙을 평범하게 사용했을 때는 일제 F닙과 비슷한 굵기이다.
위(커스텀)와 아래(엘리트)를 비교해 보면 굵기 차이가 두드러지게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조금 힘을 줘서 쓰면..

이렇게 굵기가 완전 다르게 나온다.

비교를 위해 펠리칸 M600 F닙과 나란히 보면,
펠리칸 F닙 보다 좀 더 굵어보인다.
내친김에 캡리스도 보면,

결론적으로 FA닙은 대략 일제 F닙 ~ M-B닙 정도의 표현이 가능하다.
즉 가지고 놀기 좋은 펜이라는 것.
그리고 일상적으로 쓰기에도 사실 큰 무리는 없어보인다.
제대로 쓰기만 한다면, F닙 정도로 충분히 사용 가능하다.
그 상태로 좋은 궁합의 잉크와 사용한다면, 정말 가볍고 산뜻한 필감을 준다.
흐름이 좋기로 유명한 이로시주쿠 시리즈를 사용 시 왠만하면 다 잘 나오지만, 살짝 긁히는 느낌이 든다.
반면 흐름이 가장 박하다고 알려진 펠리칸 4001시리즈를 사용 시 무척이나 부드러운 필감을 보여준다.
4001시리즈가 점도가 높아서 그런 것인지.
다만 내가 테스트해 본 것은 4001 터키옥색과 레드였는데,
터키옥색은 흐름도 은근 괜찮고 필감도 좋았던 반면,
레드는 토나올정도로 헛발질이 심하고, 필감도 좋지 않았다.
브랜드별 외에 잉크 각각의 궁합도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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