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 펠리칸 100n
펠리칸 100n
첫 빈티지 만년필.
대략 40년도쯤 생산된 물건이니 약 80살 먹은 펜이다.
첫 빈티지는 파카 51을 구매하려 했으나, 홀린듯 이 분을 모셔왔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 집필할 때 썼다는 전설의 펜.


외관은 그냥 그렇다. 짤막하고, 뭉툭한, 내 기준 잘 봐줘도 예쁘다고는 하기 힘든 펜이다.
특히 클립 위 길쭉한 캡탑이 전체적인 밸런스를 뭉개는 느낌.

캡탑에는 두 마리의 지렁이를 먹는 펠리칸 두 새끼 펠리칸에게 먹이를 주는 어미 펠리칸이 음각되어있다.


매우 빈티지스러운 링과 클립 디자인. 심플한 링과 유려한 클립이 마음에 든다. 낡은 느낌도.


캡탑에 적힌 문구는 귄터 바그너 까지는 읽을 수 있으나 나머지는 거의 지워졌다.

펠리칸의 상징인 그린 스트라이프 마블. 그저 그렇다.

노브에는 세월이 오래되어 그런건지, 원래 있는건지 모를 적갈색의 반점들이 보인다.

잉크창이 훤해서 좋다.
현행 펜들은 스트라이프때문에 잘 안보여서 화딱지난다.

.. 닙 상태가?
CN닙이고, 이외의 다른 표기가 없어서 이게 F닙인지 EF닙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사실 좀 플렉서블 하길 바랐는데 그냥 강성닙. 필감을 생각하면 오히려 잘 된 걸지도..

반대쪽 궁둥짝은 아주 예쁘게 잘 생겼다.
이 펜의 최대 장점은 무지막지하게 풍부한 흐름이라고 생각되는데, 저 독특한 모양의 피드 덕분이 아닐지?
사진찍느라 피드가 좀 말라서 그렇지만, 평소에 쓸 때는 저 피드가 항상 흥건촉촉하다.
잉크가 뚝뚝 떨어질지 모를 정도로..

옆모습. 티핑으로 봐서는 아마 EF촉이 아닐까.



M600과의 비교.
거의 포켓펜 사이즈라 M600보다 한참 짧다.
현행은 현행의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이 있고,
빈티지는 빈티지스러븐 개성이 있다.
둘다 좋다.

두 마리의 지렁이 아기새가 한 마리로 줄었다.
그리고 잘 먹었는지 통통해졌다.

클립부. 100n쪽이 훠얼씬 예뻐보인다.
사실 저 부리모양은 처음부터 썩...

100n의 닙은 말 그대로 별 볼일 없게 생겼다.

캡을 뒤에 꽂을 시 100n이 훨씬 길어진다.
이는 이 펜의 최대 장점이기도 한데, 수납시에는 포켓펜 사이즈로 매우 아담하지만,
캡을 꽂을 시 웬만한 대형기 사이즈가 된다.
무게 또한 상당히 가벼워서 오래 필기하더라도 부담이 전혀 없다.
게다가 밸런스가 무지막지하게 좋아서, 손에 얹었을 때 가벼운 무게에다가 파지마저 매우 안정적이라
잡은 듯 안 잡은 듯 한 느낌에 술술 써지는 필감이 정말이지 환상적이다. (아니 환상적은 좀 오바일지도.. 좀 많이 좋다.)


다른 만년필들과의 비교.
수납시에 엘리트와 거의 같은 사이즈지만, 캡을 꽂으면 커스텀 742와 동일한 사이즈가 된다.


필감은 매우 사각거리면서 부드러운 필감.
사각거리는게 닙 특성인지, 아니면 닙 상태가 좋지 않아서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굉장히 사각거리는데, 사람에 따라서는 기분나쁜 긁는 느낌일 지도 모르겠다.
내 생각에는 원래 사각거리는 닙인데, 흐름이 말도 안되게 풍부해서 흐름으로 부드러움을 밀어붙이는 것 같다.
써 보면 M600도 흐름이 매우 풍부하지만 비교적 빨리 마르는 반면, 100n은 쓴 이후에 한참 있어야 마른다.
이 흐름 때문에 아마 EF닙일 게 거의 F닙 굵기로 나오는 것일 것...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살살 쓰면 평소보다는 얇게 필기 가능하긴 하다.)
오로라는 써 보지 않았지만, 오로라의 그 사각거림과는 분명 다른 느낌일 테다.
본연의 사각거림이라기 보다는 뭔가 잘못된 느낌(...)이 더 들기 때문에.
그렇지만 상기한 펜 자체의 가벼움, 그리고 탁월한 그립감, 풍부한 흐름,(좋게 말하면) 적당한 사각거림의 조합이 시너지를 일으켜 정말 훌륭한 필감을 준다.
사람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충분히 실사용으로 최고다.
오래된 펜 한정 단점으로는..
일단 피스톤이 상당히 뻑뻑하다. 기름칠을 좀 해 주면 나아지겠지만..
노브에 나사산 한 쪽이 쭉 갈려있다.
평화로운 나라에서는 당연히 그런 부분은 언급을 안 한다. 꼼꼼하게 체크하고 구매하자.
그리고 부서질까봐 제대로 시도는 해보지 않았지만, 피스톤 부분이 분해가 안 된다.
또 캡이 가끔 반 바퀴 넘어서 잠궈진다..
나중에 전체적으로 오버홀을 한 번 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